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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연예

[한국인의 밥상]해발 1000미터의 진수성찬 - 고랭지 밥상

한여름 배추김치는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여의도 면적의 88배 고랭지 농업
여름 채소의 유일한 공급처 바람도 쉬지 못하는 해발 천 미터의 여름 밥상

■ 바람도 멈춰 쉬지 못하는 곳, 매봉산 배추밭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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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303미터의 매봉산 정상엔 40만 평에 달하는 배추밭이 있다. 큰 일교차로 생기는 이슬과 한낮의 온기를 머금은 돌은 매봉산 배추를 최적의 상태에서 키운다.

이정만 씨 네는 그 매봉산 정상에 사는 유일한 가족이다. 배추 농사꾼이면서 화가이자 문학가인 이정만 씨. 부모의 반대 속에도 매봉산에 들어온 이정만 씨 가족의 밥상을 만나본다. 

■ 비탈진 고랭지도 무섭지 않다! 권오경 씨 댁 감자 밥상
고랭지 농업에서 배추 다음으로 많이 재배하는 작물은 감자다. 경상북도 영양군 맹동산 정상에서 사는 권오경 씨는 고랭지 농사 경력 40년째.

대관령보다 넓은 고랭지를 찾아 들어와 감자밭을 일구기 위해 길을 내고 전기를 끌어와야 했다. 그리고 32년. 이제 맹동산은 그에게 제2의 대관령이다.
 
■ 육백마지기 일소 지순옥 여사를 아십니까
해발 1200미터에 펼쳐진 육백마지기는 우리나라 최초의 고랭지 채소밭이다. 이곳이 고랭지 채소밭으로 개간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초.

육백마지기가 개간되던 시절부터 이곳에서 평생 일해 온 지순옥 할머니는 고랭지의 산 증인이다. 그녀의 거친 손은 그 역사를 말한다. 그녀가 일군 땅에서 이제는 그녀의 아들이 새로운 특용작물을 재배한다. 50여 년 역사의 고랭지 농업은 우리 밥상을 또 어떻게 변화시킬까.

■ 산 위에서만 먹었던, 하늘과 바람만 아는 그들의 밥상
쌀이 없어 옥수수, 조, 콩으로 배를 채웠다는 함영옥 할머니. 저 멀리 높이 솟은 산등성이를 보면서 옛 생각에 잠기는 그녀의 기억 속에는 화전민 시절에 아픔이 서려 있다.

고랭지 농업이라는 말이 있기도 전 화전민이 일군 밭이 있었다. 그리고 산 아래 사람들이 먹지 않는 잡곡이 그들의 허기를 달랬다. 지금은 볼 수 없는 귀리 범벅. 다시 재현되는 그들만의 밥상을 만나 본다.

■ 고랭지 밥상은 여전히 나를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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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많은 경사진 밭. 젊은 일소가 거침없이 쟁기질한다. 트랙터가 들어오지 못하는 돌밭은 일소의 몫이다.
돌이 많은 경사진 밭. 젊은 일소가 거침없이 쟁기질한다. 트랙터가 들어오지 못하는 돌밭은 일소의 몫이다.

강원도 산비탈, 크고 작은 고랭지 밭에는 이미 사라졌다고 생각한 일소가 여전히 귀한 몸값을 자랑한다.
 
93세 노모와 78세 장모를 이웃집에 모시고 사는 박광숙 씨는 점점 기계화되는 고랭지 농업 시대에 여전히 일소 한 마리로 한해 농사를 짓는다. 박광숙 씨네 여름 밥상에는 산 밑에서와는 다른 시간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