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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연예

투명경제를 위한 대개혁, 금융실명제[다큐극장]

20년 전만 해도 도장 하나만 있으면 가명으로 금융거래를 할 수 있었다. 비실명제는 탈세와 검은 거래가 활개 치는 어둠의 공간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바뀌었다. 투명 경제의 서막을 연 것은 93년 8월 12일 전격 실시된 금융실명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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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을 강타한 금융실명제
“이 시간 이후 모든 금융거래는 실명으로만 이뤄집니다” 금융실명제는 대한민국 경제의 근간을 뒤흔든 대지진이었다. 발표 다음 날,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증시는 연이틀 폭락했고, 금값은 폭등했다. 현금은 개인 금고 속으로 대거 숨어 버렸다. 무엇보다 17조원 규모의 사채시장에는 핵폭탄급 충격이었다.

◆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금융실명제가 처음 거론 된 것은 5공 시절, 이철희·장영자 부부가 연루된 7,000억 원대의 어음사기사건이 터진 시점이었다.

장영자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처삼촌인 이규광 광업진흥공사 사장의 처제임이 알려지면서 사건의 충격은 더욱 컸다. 민심수습책으로 금융실명제가 등장했다.

하지만 정치권이 들고 일어나 무산됐다. 이후 6공 때 부활한 금융실명제는 3년 뒤 실시를 약속했지만 슬그머니 유보되고 말았다. 금융실명제는 정치자금 통로를 차단할 것이 자명했다. 5,6공은 과연 금융실명제를 못한 걸까, 안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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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18명의 비밀작전 - 보안에 실패하면 한강으로!
“금융실명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대통령긴급명령으로 전격 실시하는 게 좋겠습니다.” 김영삼 대통령과 이경식경제부총리의 정례 독대자리에서 금융실명제의 향방이 결정됐다.

충격적인 조치일 뿐 아니라 새나가면 반발이 불 보듯 뻔했으므로 보안이 생명이었다. 극비리에 실무자가 차출됐다.

위장 해외출장 명령을 내려 공항에서 작업실로 직행시켰다. 국세청 직원은 대통령이 직접 불러냈다. 영문을 몰랐던 국세청장은 떠나는 엘리베이터까지 따라 다녔다.

누가 알새라 작전명은 ‘남북통일팀’으로 했고 누가 볼 새라 음식도 작업실로 직접 날랐다. “보안에 실패하면 한강으로 가자!” 차출된 18명은 결의를 다졌다. 국민 전체를 상대로 한 비밀작전은 성공했을까?

◆ 한국 경제 질서를 뒤집은 40일간의 전쟁
“조세 포탈한 자금에 대해서는 출처조사를 해야 합니다 VS 그렇게 하면 경제가 경색될 겁니다.” “차명계좌는 금지시켜야 합니다! VS 은행 창구에 판사를 앉히자는 겁니까?” “차명계좌는 예금주가 그 돈을 갖게 해 버립시다! VS 사유재산제도를 파괴하자는 얘깁니까?” 금융실명제의 강도와 범위, 후속조치를 두고 쟁점이 첨예했다. 40일 간 실명제 비밀작업팀은 어떤 작품을 탄생시켰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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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명 경제의 기반을 만든 금융실명제
95년 두 전직 대통령의 수천억 비자금이 폭로됐다. 뿌리 깊은 정경유착의 실체를 드러내고 이를 차단시킨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돈의 흐름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 금융실명제의 위력은 정치권에 검은 돈의 유입을 대부분 차단시켰고, 기업관행의 변화도 가져왔다. 지하경제가 위축되면서 우리경제는 맑아졌고 이와 같은 투명성은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