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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신

서울성모병원, 국내 첫 의사 장기기증자 20주기 추모식

1993년 뇌사판정 고 음태인 씨 간장 등 5개 장기기증 새 생명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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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는 감사한 당신이 있어요”“의사 뇌사장기기증 고 음태인을 기리는  20주기 추모 음악회에 사회를 맡은 이 에스더입니다.”

다소 긴장된 표정의 중년 여성의 인사를 시작으로 특별한 공연이 열렸다.

지난 20일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로비에서 다른 사람의 간을 이식 받은 환자들이 음악회를 연 것. 올해는 5명에게 생명을 나눠주고 떠난 국내 1호 젊은 의사 故 음태인(당시 25세)씨의 추모 20주년이라 의미를 더했다.

음악회의 사회를 맡은 이 씨(여, 57세)는 간경화로 1993년부터 10년동안 투병생활을 했고 치료를 위해 색전술까지 받았다. 하지만 복수가 차올라 생명이 위독했던 상태에서 2003년 극적으로 간을 공여할 뇌사자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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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편이 어려워 선뜻 수술을 하겠다고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던 이 씨를 여러 이웃이 도와 성공리에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

“새로운 생명을 공짜로 받았기 때문에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다”는 이 씨는 본인의 투병생활을 통해 얻은 삶의 교훈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 상담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다.

이어 2002년 부인의 간을 이식 받은 후 급성거부반응으로 뇌사자의 간을 재이식 받아야 한 했던 정석만 씨는 준비한 통기타 연주에 앞서 “제게 새 삶을 선물해주신 장기 기증자분과 병원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며 “어렵게 받은 새 생명, 앞으로 소중히 지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5년 전 우리나라 최초로 타 병원과의 교환 간이식으로 극적인 삶을 되찾은 박성우 씨는 친숙한 가요뿐 아니라 팝송을 선사해 관람객들로부터 높은 호응을 얻었다.

장기를 기증받은 환자들의 음악회는 이 병원 인턴으로 근무했던 음태인 씨를 기리기 위한 음악회다.

평소 교내 오케스트라에서 클라리넷을 불었고, 스키를 잘 타고, 친구가 많았던 고인은 1993년 6월 22일 교통사고로 뇌사했다. 고민 끝에 고인과 고인의 아버지인 소아과 의사 음두은(78) 박사의 모교인 가톨릭의대로 옮겨 장기를 기증하게 됐다.  

서울성모병원 김인철 명예교수가 장기 척출 수술을 집도했다. 김 교수는 음 박사의 대학 동기이자 고인의 스승이었다.

고인과 함께 공부한 전공의와 인턴들은 스승 뒤에 서서 수술을 참관했다.

고인과 동기인 김양수 교수(서울성모병원 정형외과)는 “태인이는 우리반에서 제일 잘 생기고, 성격도 좋아 남자 동기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고 회상했다.

“본과 4학년 때 24시간 개방하는 도서관에서 서로 책상 자리를 맡아주며 의사국가고시를 준비하느라 밤샘 공부를 함께 했던 태인이가 장기를 기증하기 위해 수술대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며 동기들 모두 오열했었다”고 말했다.

고인의 간․신장․각막을 이식받은 사람 5명은 지금까지도 건강하다. 20년이 지난 현재 서울성모병원에서 뇌사상태로 장기기증을 하고 떠난 사람은 200명, 이를 통해 새 생명을 받은 환자는 1000여명에 달한다.

생체 이식을 포함하면 간 이식 환자가 780명, 신장 이식환자는 2200명이다. 한 명의 숭고한 희생을 시작으로 생명을 나누는 문화가 꽃을 피운 것이다.

고인의 간 이식 수술을 집도한 김동구 교수(서울성모병원 간담췌외과)는 “고인의 숭고한 희생과 고인 가족의 헌신적인 결정 덕분에 우리 병원의 간이식 수술을 처음 시작할 수 있었다”며 “고인 뿐 아닌 장기를 기증해 주신 많은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의 평안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양철우 장기이식센터장은 “이식 받고 건강하게 생활하면서 여가로 악기 까지 연주하는 환자들을 보면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도 희망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마음에 음악회를 시작하게 되었다”며 “앞으로 우리나라의 뇌사장기기증이 더욱 활성화되어 보다 많은 환자들이 장기이식으로 새 삶을 살며 서로 감사하는 아름다운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